부천 영화제, 3년 만.

코로나로 인해 못갔던 부천 국제영화제. 작년엔 예매까지 했었는데, 갑자기 코로나가 재유행한다고 해서 결국 가지 못했었다. 2015년부터 매년 갔었었는데, 2020, 21년 2년을 쉬고, 2022년에 다시 출근 도장을 찍었다.

고작 2년을 쉬었을 뿐인데, 부천시청 주변 모습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청사 내에 예술극장(?)같은 건물도 들어섰고, (내가 마지막으로 갔었을 때) 한창 공사 중이던 곳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으니.. 영화제 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자유시장 내 ‘중국면식’은 여전히 성업(!)중이었다. 밥을 딴 데서 먹고 가서 이번엔 뭔가 먹어볼 기회는 없었지만.. 여름이라 사올 수도 없었던게 더욱 더 아쉽다.
잠깐 딴 소리를 해보자면, 자유시장을 보면서 예전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 봤던 일본 어느 시장이 생각났다. 거기엔 시장 내에서 각종 음식(반찬)을 사다가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선 밥과 국만을 팔았던 듯 하고, 나머지는 모두 시장에서 조금씩 사다가 먹을 수 있게끔 해놓았던데, 우리도 그런 방식을 도입하면 좋을 듯 한데…

다시 영화제로 와서, 또 한가지 차이라면.. 확인하진 못했지만, 각 행사장간 이동하던 셔틀버스가 안보였다. 홈페이지에서 찾아봤으나, 해당 내용이 없었으니, 아마도 운행하지 않는 모양이다. 코로나 때문인건지, 아니면 이용빈도가 떨어져 그런건지, 돈이 없어 그런건지는 알 수가 없다.

총 두편을 봤는데, 일부러 그리 고르진 않았지만, 우연히도 모두 부천시청에서 보게 되어, 거리를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따라서 길거리 분위기, 자원봉사자들 배치/활동 등등을 볼 수는 없었다. 기타, 전시등도 보려고는 했으나, 얼핏 보니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하여, 귀찮아서 그냥 넘겨버렸다. 어차피 영화 두편간 간격이 한시간 정도밖에 없었던지라..

점심은 좀 일찍가서 ‘맛조은 돼지불백’으로 해결. 부천 테크노파크에 있는 곳인데, 꽤 괜찮았다. 반찬도 적당하고, 맛있게 구워져나와서 더 좋았다. 왜 우리동네엔 이런 데가 없나!!
저녁은 시청 바로 옆에 있는 중국집 ‘아리산’. 딱 동네 중국집 분위기에, 가격도 싼 편이고, 맛이야 뭐.. 중국집이 다 비슷하지 않으려나. 뭔 대단한 요리를 먹지도 않았기에.


첫 영화는 대만에서 날아온 ‘여배우, 레슬링하다’. 일본 AV 계에서 활동하던 대만 출신 여배우가 본국으로 돌아가 우연히 레슬링계에 입문하여 벌어지는 여러가지 소동을 그린 코미디 드라마. 재미있었다. 다소 진부한 전개(Cliche 라고 할까..)가 이어지긴 했고, 어차피 이런 영화들의 결말이야 ‘즐겁고 행복한 마무리’이므로 그냥 재밌게 보고 웃어주기만 하면 되지 않을지.

다만, 몇가지. 궁금한게 있었다.
일본 AV 야 워낙 유명하니 그렇다쳐도, 대만에도 AV 가 있나? 극 중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는데..
또 하나는, AV 출신 배우들의 삶이랄까. 대한민국 국적으로 일본 AV 에 몸담은 여성은, 내가 알기론 아직까진 없다. 90년대였나, 2000년 초반이었나, 국내에서 유명했던 한 에로배우가 일본 AV 에 출연하겠다고 했었던 적은 있었는데, 결국 실현되지는 않았었다. 게다가,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실정법 위반이라고 했던 듯 한데..
아무튼, 이 영화에선 일본 AV 에 출연했던 여배우를 조롱하고 업신여기기는 해도, 적어도 ‘없는 사람’ 취급은 하진 않았다. 사실, 일본의 전현직 AV 배우들의 실제 삶이 어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가끔 이런 내용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긴 하지만 그리 많지도 않고, 아직 내가 본 적도 없다.

과연, 그들이 그 직업을 그만두고도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지…
이 영화에서는 아주 살짝 그 부분을 건드리고 있긴 하지만, 그다지 심각하게 접근하고 있지는 않다. 그랬다면 영화 장르가 완전히 달라졌겠지.

요즘은 넷플릭스 덕에 대만 문화(영화/TV)를 자주 접할 순 있지만, 그래도 아직 대만 문화가 궁금하다. 이 영화만 보면 예전 홍콩영화 분위기도 조금 풍긴다. 몇년 전 부천에서 봤던 대만영화도 코미디였는데.. 대만에 코미디 영화가 많은가? 내가 접한 샘플이 2개 뿐이므로, 그걸로 모집단을 추정하는건 크나큰 곡해(曲解)겠지.


‘아리산’에서 간짜장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오니, 시청 광장에는 야간 영화 상영 준비가 한창이었다.
헌데, 다소 특이해보이는 간이 의자(쿠션?)를 나눠주고 있길래 궁금해서 주최 측에 가서 어떤 재질인지 살펴봤다. 그런데.. 살짝 쿠션을 만져본 순간, 무료로 쿠션을 대여해준다면서 영화 보고 가라는 자원봉사자의 한마디가 귀를 간질였다.
난 잠시 뒤에 볼 영화가 있으니 가야 한다고 말을 건넸는데, 돌아온 반응이 조금 의외였다.

지금까지 수십년을 살면서, 저런 경우 답으로 들을 수 있는 말은 뻔했다.

“아 그러시구나~ 좋은 관람 되세요.”

이런 식으로, 그저 인사치레로 건네는 정석같은 표현이 전부였다. 헌데, 그 친구는 굉장히 높고 살짝 격앙된 어조로,

“정말요? 아 재밌겠다!!! 기타 등등 어쩌고 저쩌고~~”

내가 그 때 들은 말을 단어 하나 하나 정확히 기억하진 못해서, 여기에 맘대로 첨언을 하진 않겠으나, 대충 저런 느낌이었다. 그 반응에 놀랍기도 했고, 뭐 이렇게까지 표현할 일인가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게 요즘 애들의 감정 표현 방식인가??
내가 최근 몇년간 만난 20대는 조카들과, 편의점 점원 밖엔 없었으니..
아무튼, 그 친구의 격렬한 환대(?) 속에 2차 관람에 들어갔는데..


두번째 영화는 일본 영화로, ‘밤 저편으로의 여행’ 이었다. 글을 쓰면서 원제가 뭔지 살펴보려고 영화제 홈페이지로 갔으나 영어 제목만 써 있었다. 영어 제목을 구글 검색해본 결과, 원제는 ‘夜を越える旅’. 그대로 해석하자면, ‘밤을 넘는 여행’. 그러나, 旅 는 たび 이고, 일본어로 旅行 은 りょこう 다. 이 두 단어가 한자어와 고유어라는 차이 뿐인지, 아니면 의미에 미묘한 다른점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영화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여행’이라고 까지 붙일만큼 거창한 움직임(?)은 아니었으니,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일시적으로 다른 곳에 가는 것’이라는 뜻인 旅(たび)를 썼는지도. 영화 끝나고 감독및 제작자와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 생각 났으면 한번 물어봤었어도 좋았을 듯.
‘밤 저편으로의 여행’ 이란 표현은 딱 일본어식 문투인데, 정작 일본어 원제에는 ‘の(의)’가 없다.

제목은 이만하고.. 영화는, 그냥 그랬다. 살짝 공포가 섞여 있는데, 무서움은 거의 없고, 불친절함은 이런 류 영화가 제공하는 기본 예절. 여자가 왜 죽었는지, 왜 누군가를 제물 삼아 데려가려 하는지 등등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젊은 날, 정체성 문제를 풀어낸 듯 하긴 한데..
그냥 그런가보다 할 뿐. 영화제에서나 볼 법한 영화. 사실, 요즘 볼 게 너무나 많기 때문에, 굳이 집에서나, 영화관엘 가서나 보기엔 조금 애매한 선이랄까. 상업영화라 볼 순 없고, 독립영화다.

이 영화엔 GV 시간이 있었다. ‘GV’ 라는 용어 뒷담화도 이어질텐데, 이건 다른 글에서. (당연하다 싶지만, GV 는 영어가 아니다. Guest Visit 의 Acronym 이라지만, Guest 도, Visit 도 의미가 모호하다.)
영화제를 갈 때마다 가능한한 ‘관객과 만남’이 있는 영화를 적어도 하나는 선택하곤 하는데, 이번은 바로 이 영화가 선택됐다. 6번 영화제를 방문했는데, 그 중 내가 본 관계자중 제일 유명인은 홍콩 배우 ‘임달화’였었다. 그게 2015년, 내 첫 부천영화제 때였던 듯 한데..
이번엔 감독과 제작자가 참여했다.

질/답에선 별 특이한 내용이 오가지는 않았었는데, 감독이 마지막에 한 얘기가 기억에 남았다.

“이런 질의응답 시간에 일본인들은 별 질문이 없는데, 한국인들은 그렇지 않아서 놀랐습니다.”

한국사람들도 이런데 익숙하진 않을텐데.. 요즘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한테 뭔가 물어보라고 하면 다들 꿀먹은 벙어리가 되지 않나..? 적어도 10여년전, 내가 듣던 강의에서, 첫 인사를 하던 강사가 이렇게 얘기했던 게 생각이 난다.

“절대로 수강생 여러분께 질문 하지 않습니다. ^^”

하지만, 내가 겪어본 경험으로는, 적어도 부천 영화제에선 질문이 끊임없이 나왔었다. 나도 한번 한 적이 있었고.
아무튼, 한국/일본은 가깝지만 꽤 먼 나라임엔 틀림이 없다.

3년만에 찾았던 부천에서 한가지 아쉬웠던 점을 꼽으라면, 관객이 너무 없었다. ‘여배우, 레슬링하다’는 낮시간이라 그렇다쳐도, ‘밤 저편으로의 여행’에도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훨씬 많았다. 코로나 탓일지, 영화제에 관심이 많이 떨어진 걸지.

다 보고 나오니, 시청 마당에선 ‘봄날’이 상영 중이었다. 다행히 이 날, 여름같지 않게 선선해서 삼삼오오 옹기종기 광장에 앉은 이들에겐 좋은 시간이 됐을 듯.
아직 영화제가 끝이 나진 않았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안된다. 27회를 기다리기엔 너무 길고.. 올 해는 꼭 한번, BIAF 엘 가보기로. 매년 가려곤 했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한번도 못가봤는데..

Author: 아무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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